돌아온 탕자(1) - 누가복음 15장 11-24절 - 1985년도 3월19일에 제가 중생하고 회개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후로 이 탕자의 비유를 읽을 때마다 목이 메어서 말씀을 읽지를 못했었습니다. 한 30년 지나니까 가슴이 딱딱해지고 감수성도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 모두를 향해서 탕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중요한 핵심단어는 탕자의 회개와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 탕자라는 것은 무엇이냐 모든 사람이 짓는 죄가 무엇이냐 둘째,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죄의 길에서 돌이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이 평생 울고 울어도 갚을 길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회개할 것 없는 의인 하나'보다 회개해야 하는 '죄인 하나'를 왜 그렇게 귀하게 여기실까요? 온갖 짓을 다 하다가 돌아온 죄인 하나를 왜 그렇게 기쁘게 여기실까요? 그 갚을 길이 없는 은혜를 받아본 자는 압니다. 여기에는 두 종류의 탕자가 나옵니다. 하나는 집밖으로 나간 탕자, 집 안에 있는 탕자가 나옵니다. 오늘은 집밖으로 나간 탕자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구원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의 근본적인 죄가 무엇이냐는 것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이 근본적인 죄를 원죄라고 하는데 이 탕자처럼 아버지가 싫고, 아버지 집에 있는 것도 싫고, 아버지를 떠나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근본적이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싫고, 율법도 싫고, 계명도 지키기 싫고, 간음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도적질하지말라 그런 말 듣기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내 분깃을 주소서 하고는 떠납니다. 아버지는 그 재산을 왜 주었을까요? 마음이 이미 떠나있고, 잡아둘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롭게 살아보라고 내버려두셨습니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 의지입니다. 북한사람들이 축구경기하는 걸 봤는데, 일렬로 똑바로 앉아서 손뼉도 다 같이 똑같이 치고… 일어나서 휘파람불고 일어나서 소리지르는 사람도 없고, 이건 인간집단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이런 로보트 집단을 만들고 싶지 않았지요. 인간이 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오늘 말씀하시는 첫번째 1막입니다. 이걸 다 가지고 마음대로 나가서 제일 먼저 한 게 술 먹고 방탕하고 정욕으로 사는 삶이었어요. 인간은 하나님이 없으면 자기의 쾌락을 좇아서 살아요 그 쾌락이라는 것이 어떤 것은 고상하게 심미안 적인 쾌락이 있고 어떤 것은 무식하게 원시적인 쾌락이 있도 있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전부가 이기적인 만족을 위한 쾌락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삶이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게 되있습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사는 쾌락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어려움이 닥치기 시작합니다. 비극이 닥칠 때라야 인간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건강하고 돈이 많고 잘될 때는 절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아요 그것이 근본적인 죄입니다. 내 몸이 병 들었을때, 내 돈이 다 떨어졌을때 심각하게 위협을 느끼면, 그제서야 생각하기를 시작해요 루이드 존스 목사님은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갈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생각을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똑바로 자기 현실을 알게됩니다. 내가 주려 죽는구나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생각해냅니다. 내 아버지 집은 안전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고 은혜로운 곳이고 매일 사랑으로 돌봐주시던 내 아버지가 계셨지 그래 돌아가자 뻔뻔하니까 아들로서는 아니고 일군중의 하나로 써달라고 돌아가리라 하면서 자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구원의 출발점이 됩니다. 죄악 된 자리에서, 돼지처럼 뒹글던 자리에서, 험한 오욕된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구원의 출발점입니다. 로마서에서 말씀하기를 이 근본적인 죄를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을 만나고 중생하는 길 딱 하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중생전의 우리의 상태를 롬 1장 21, 22, 28, 32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되어...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모든 불의, 사람을 참수하고 모함하고 남의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갈취하고 시기, 살인, 분격, 사기, 악독이 가득하고 수근수근하는 자, 비방하는 자,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세상은 이러한 일로 꽉 차있어요 이런 사람이 죽을 때에 보면 압니다. 어떤 병으로 죽었던간에 하나님께 중생하고 간 사람은 얼굴도 편안해요. 그런데 회개도 안하고 그저 멋대로 살던 사람 사회적으로 아무리 높은 사람이었어도 그 얼굴이 괴롭습니다. 사람이 죽음에 선 순간 이생과 저생의 중간에 섰을 때 사탄이 와서 데려갑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었어도 사람은 죄가 있으니까 사탄이 데려가려고 옵니다. 그러나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가 와서 예수의 보혈로 그를 증거하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곧바로 하나님께로 데려갑니다. 유다서를 보면 모세의 시체를 놓고 사탄과 천사가 싸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시체를 사탄이 데려가려니까 천사장이 나타나서 모세를 데려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육체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소중히 여겨야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잘 믿어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내 생각이 아버지께로 향하게 되고, 곧 그 자리는 죄의 자리를 벗어나는 시간입니다. 거지꼴이 되어서 집으로 걸어가는데 이게 복음중의 복음인 것은 …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바깥에 나와서 그 아들이 언제 돌아오는지 매일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정말 복음입니다. 아버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거기에 서 계십니다. 세상에 아무데도 길이 없고 깜깜해 돌아갈 곳이 없으면, 자살 밖에는 할 방법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한 군데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죄도 예수님 앞에 탕감 받지 못할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게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왜? 내 아들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내 아들이니까요.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아버지를 보자 곧바로 회개를 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이 탕자를 보셔야 합니다. 첫째로) 철저히 자기의 잘못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내가 저 친구 때문에 그랬습니다. 저 밧세바가 나를 유혹해서 그랬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그랬고 이 탕자도 그랬고… 범죄했나이다. 하면서 드디어 회개가 시작이 됩니다. 성령님이 빛을 비추시게 되면 남이 나한테 잘못 한 것은 하나도 안 보입니다. 오직 내가 잘못 한 것과 내가 죄지은 것만 보입니다. 두번째) 21절-내가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사오니 아버지의 아들임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집의 종의 하나로 써주시옵소서 자기 죄를 자각한 사람은 낮아집니다. 세번째) 절대 순종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그 듣기 싫었던 그 아버지의 말이 상상을 불허하는 무한한 은혜임을 알게 되고 아버지의 말씀 속에서 알아가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단어는 회개입니다. 정리를 해보자면…회개는 어떻게 하는가 ... ....1) 나는 하나님앞에 범죄하였나이다. ....2) 지금은 아버지의 종으로 남겠나이다. ....3) 그 아버지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면서 새 삶이 시작이 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처음 돌아올때 의 은혜시간을 잊어버립니다. 그때마다 탕자의 비유를 보시면서 무디어져가는 은혜의 순간을 자꾸 지켜 나가시고 성령의 은혜 안에 거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