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의 소경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요한복음 9장 1-9절)" 오늘은 개혁 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를 믿고 "변화되었다 하는 것은 개혁"입니다. 어떤 사회나 국가나 가정을 막론하고 이 개혁이 없으면 망합니다. 19세기 말은 개혁기의 시대였습니다. 일본만 해도 메이지 유신으로 빠르게 변해서 오늘날 첨단을 달리는 국가가 되었고 조선은 쇄국정책을 고집함으로 해서 나라가 일본에 합병당하는 일을 겪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6.25전쟁 당시 필리핀은 우리를 도왔던 국가중의 하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이 60불밖에 안하던 그때 당시 필리핀은 800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필리핀은 시대의 변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의 전통과 자기 스타일만을 고집하다가 오늘날 국민소득이 1만불을 넘는 한국에 비해서 국민소득 60불도 넘지 못하는 나라로 후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미국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합니까를 참 많이 하나님께 여쭈어봅니다. 이 시대는 평안하다. 예수를 믿어라,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 전에 우리가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평화도 회개가 먼저 이루어져야 평화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 죄가 무언지 알아야 회개를 하지요 내 죄는 하나님을 믿지않는죄,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 지 따지는 죄, 하나님 없이 해보려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삽니다. 돈벌고 이성간에 만나고 하면서 살아가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주님이 주신 기관인 교회와 가정이 하나님앞에 올바로 서야합니다. 이것이 해결이 되어야 결혼생활이건 돈벌이건 신앙생활이건 제대로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여야합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눈물이 나고 심령 깊은 곳에 십자가를 의지하는 곳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아닌 것은 중지하여야하고 이 시대를 본받지말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살아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민오던 그 순간 변화를 맞이합니다. 이 변화를 잘 이겨내고 살아야 우리가 자손에게 물려줄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금가마를 탔던 기억은 다 잊고 이마에 피땀흘리면서 다시 시작하세요 나 이거 못한다 저거 못한다 하는 자는 낙오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변화를 받습니까? 첫째,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예수 의 신선한 피가 들어가야합니다. 만약, 교회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도 없고, 여전히 거짓말하고, 여전히 나쁜 짓하고, 사랑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울리는 꽹과리처럼 요란하게 떠들기만하는 교회라면 아무리 수천명이 앉아있어도 소망이 없습니다. 교회는 보이지 않게 믿음과 사랑이 제일 먼저 나타나야 합니다. 머리에는 미움이 있어도 가슴 속에는 그것을 감싸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도 세상과 똑 같아지고 맙니다. 물론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도 기질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기질 그대로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다만 옳지 않는 것들을 버리지않으려는 고집을 산산히 깨고 내가 잘났다고 하는 것을 의지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 의지하여 죄인된 나를 못박아야합니다. 둘째로 지금까지 생각했던 믿음의 관념을 엎으세요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나가는데 날때 부터 소경인 자가 앉아있는데 제자들이 물어봅니다. 이 제자들은 성령받기 전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신줄도 모르고 " 랍비여, 선생이여" 하고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저 사람이 소경이 된것은 자기의 죄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이 말의 의미는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은 나의 과거에 지은 죄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반대로 뒤집어보면 내가 지금 형통한 것은 과거에 내가 하나님앞에 의롭게 한 것이 있고, 크레딧과 공적을 많이 쌓아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좋게 했다는 "자기 의의 사상"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기본은 이런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변화받아야하는 제일 중심이 바로 이 점입니다. 우리의 행위나 불행이나 소경된것이나 아픈 것은 "우리에게 있지않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대답하신 것은 그에게 이제부터 나타내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은 그 모든 것이 나쁜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요 내가 깨지고 병든것도 미래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고 고난과 고통과 아픔이 발판이 되고 디딤돌이 되서 미래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모든 초석이 된다는 이 생각 자체가 변화가 되어야합니다. 모든 인본주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신본주의 생각으로 바꾸지 아니하면 우리 신앙은 변할 수가 없습니다. 매일같이 다른 사람 정죄하게 되고 나 자신을 참수하게 되고 마귀에게 끌려가서 결국은 3류 신앙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막론하고 1류 인생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항상 하나님과 교신을 해서 자꾸 자꾸 하나님게서 내게 하시는 말씀을 자꾸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물질을 주실때는 이 세상에서 먹고 살 것과 이 세상에 뿌릴 종자씨 두 가지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것이라고 자기가 다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 중에서 반드시 종자씨를 남겨 하나님이 선하신 뜻을 위해 써야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사람이 바뀌는 운동이에요 무엇으로 바뀌냐 하나님의 말씀과 살아계신 예수의 신선하신 피가 우리를 바꿉니다. 지금까지 "생각도 없이 입으로만 되뇌기만" 하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생생한 예수의 피가 우리 속에 들어와야합니다. 에스라가 무너진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킬 때 성벽도 무너지고 재정도 무너지고 신앙도 무너지고 에스라가 했던 제일 먼저 했던 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흥을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제대로 전달이 되고, 예수의 십자가가 생생히 공급이 되면 은혜안에서 살아나기를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살았구나를 느끼게 되면 가치관이 달라지게되 그때부터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개혁입니다. 예수님이 이 소경을 고치신 사건에서 예수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확인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서 사람이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신 그분께서 진흙을 이기시는 손길을 느껴보시고 주님의 침이 묻은 진흙을 우리 눈에 바르고 실로암 가에 가서 우리 눈을 뜨신 후에 살아계신 주를 만나시고 우리 신앙, 대신관계, 대인관계, 대아관계를 잘 점검하고 이 세상에 하나님을 본 자가 없으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본 자" 라고 말씀 하신 대로 내가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람이라고 여기고 내 자식 바라보는듯 사랑 흉내라도 내보시고 진실한 회개를 통하여, 그리고 자기의 의의를 주의 십자가앞에 내려놓고 우리 영혼의 개혁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