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꿈 창세기 42장 1-25절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꿈대로 8년동안 풍년이 들었을때 그는 각 성에다가 양식을 보관해두었습니다. 드디어 기근이 닥치자 곡물을 팔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중에 하나입니다. 야곱의 집에도 기근이 닥쳤고 야곱은 양식이 필요해서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고자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애굽을 가기를 꺼려했습니다. 첫째 이유는 애굽으로 가는 길이 험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둘째 이유는 그들이 미워하던 동생 요셉을 애굽땅에 노예로 팔아먹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근때문에 가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하루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자기 형들이 들어옵니다. 실로 20년만의 해후입니다. 이들을 만나게 해준것은 극심한 흉년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본의 아니게 원수처럼 헤어져서 형제나 가족을 보지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화해를 시도하려고 해도 우리 힘으로 되지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둡니다. 그때는 항상 위기 때입니다. 위기 때는 서로가 서로를 용납을 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조용히 그 때를 기다리고 있으면 됩니다. 요셉은 결혼을 해서 첫 아들을 낳았을때 그 이름을 므낫세라고 했습니다. 내가 지난 아버지집의 모든 아픔을 잊어버렸다는 뜻이요 에브라임을 낳았을때 이제는 창대하고 번성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요셉은 노예로 팔려 온 이래로 감옥에서나 보디발의 집에서나 그 아픈 것이 늘 가슴에 있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도대체 형들이 왜 자기를 팔아먹었는지. 왜 내가 형들에게 버림을 받았을까하는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눈앞에 나타난 형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를 고심합니다. 성경에 보면 42장 9절에 아주 결정적인 한 말씀이 있는데 요셉이 그들에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꿈은 요셉이 높아지는 꿈이지만 형제들이 그에게 절하는 꿈이기도 합니다. 꿈에 관한한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명철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꿈은 자신으로 인해 그의 가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요셉에게는 그들을 살리고 죽일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들에 대한 원한도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무서운 흉년이 닥쳐올 것을 알고 있었고, 이렇게 곡식이나 몇번 왔다갔다 해서 해결될일이 아님을 잘 알았습니다. 앞으로 한 10년은 돌보아주어야 이 식구들이 먹고 살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에만 있으면 먹고 살길이 있다고 생각한 그는 어떻게 해서든 그 가족을 데려와야겠는데 그러기위해서는 먼저 이 사람들과 화해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그의 과제가 놓여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앞에 갑자기 나타나서 내가 네 형제다라고 밝히면 그 형제들은 요번만 받아가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한 짓을 아버지에게 낱낱이 고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과제는 지금껏 회개하지 않은 옛날 그대로의 형들이라면 요셉이 총리임을 믿고 이 애굽에서 무슨 짓을 할 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고민은 복수가 아니라 구원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복수하고픈 생각이 왜 없었겠습니까? 요셉은 흠이 없고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임은 맞지만, 그도 똑같이 인간입니다. 여자의 유혹을 너무나도 급해서 도망을 쳐야할 정도로 그도 인간이었습니다. 가슴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잘못된 길로 가기 쉬운 똑같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언제 어느때라도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있는한 우리도 요셉처럼 천하무적이요, 언제라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끈을 하나 잡습니다. 그게 베냐민입니다. 이 집에서 베냐민은 야곱의 친동생으로 요셉이 없어진 후에 야곱은 요셉처럼 베냐민이 없어질새라 그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을 데리고 오면 아버지가 따라오고 온식구가 다 올 것임을 알았습니다. 자, 이제 그의 지혜를 보십시요. 요셉은 그들을 스파이라고 심문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스파이가 아니라는 증명을 하기 위해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부 해야했습니다. 다 듣고 나서 요셉은 다음에 올때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말합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입니다. 베냐민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의 끈입니다. 요셉과 그 형제들의 화해를 위해서 만드신 은혜의 끈으로 삼아주었습니다. 베냐민을 데려다 놓으면 그 형제들이 도망을 가지 못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것 우리가 돈이 왕창벌렸으면 좋은데 조금씩만 벌어 어려움을 확 해결해주셨으면 좋은데 조금씩만 해결해주십니다. 만약 해결을 몽땅 해주시면 우리는 하나님께 굿바이하고 가버릴 존재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해결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망한 것은 은혜의 끈이라는것 내가 병이 생기는 것은 은혜의 끈이라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베냐민을 볼모로 잡아두신 것처럼 우리에게 문제와 병을 볼모로 잡아두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우선 과거에 지은 죄를 용서받아야합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안되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발을 씻듯이 죄를 회개하여야합니다. 그들은 20년전에 동생을 팔아먹은 것에 대한 죄값을 치른다고 가슴을 치면서 뉘우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요셉이 보기에는 아직은 정말로 회개가 아님으로 아직 요셉은 자신을 밝히면 안됩니다. 회개는 행동이 수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정말로 바라는 것이 있을겁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좋은 대학을 들어가거나 하는 것, 말입니다. 물론 우리도 세상에서도 성공해야합니다. 성공하지 말아야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이것을 분토와 같이 여겨야합니다. 오직 이런 세상적인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써야될 것이지 이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이 끝날때가지 죽도록 꿈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하고, 전력을 다할 때 하나님이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통해서 신앙이 든든해지면 그때부터 복 주어 거룩하게 하시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여러분께 차게 하시고 충족히 먹고 살것을 주십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왜 못먹고 헐벗게 하십니까? 아닙니다. 결국 시므온이 인질로 남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루 안에 곡물과 바꾸었던 돈이 그대로 들어있는걸 보고 혼이 나갈 정도로 깜짝 놀랍니다.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에게 다 이야기를 하자 야곱의 반응은 원망이었습니다. 야곱은 시므온도 죽었다고 생각하고 베냐민도 죽이려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실들이 하나님의 구원하려는 계획인 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야곱은 정말 신앙이 깊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이 현실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이 닥칠때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지 보세요 그것이 내 신앙의 현주소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한테 돈을 손해보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즉시 원망이 먼저 떠오른다면 얼른 씻어버리세요. 말로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듣고 보응하시는 분이십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믿음이 없을 적에는 인생의 최악을 보게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을때는 인생의 최선을 보게되어있습니다. 똑같은 내 마음으로 하는 생각인데 믿음이 없고 있고의 차이에 따라 내 마음이 최악과 최선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유는 몰라도 내게 닥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받아들일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