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이 보젤라, 살인범 누명쓴 복서의 감동 데뷔전 뭉클

6월 22일 MBC의 서프라이즈에서 방송된 '위대한 도전'


52세 흑인 복서 듀이 보젤라는 2011년 10월 15일 LA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경기에 섰다.

보잘 것 없는 무명 선수의 프로 데뷔전. 하지만 경기장은 수 많은 관중들로 가득 찼고 언론의 관심 역시 집중됐다.
또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직접 격려 전화를 걸어 이 무명 선수를 응원했다.


1951년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난 듀이 보젤라는 가난했지만 복서를 꿈꾸며 성실히 살았다.
하지만 그는 2급 살인죄로 체포됐다. 1977년 뉴욕 퍼킴시에서는 92살 노인 엠마 크랩서가 살해된 채 발견됐는데 이 노인을 죽인 살인범으로 듀이 보젤라가 지목된 것이다.

듀이 보젤라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목격자들의 증언이 받아들여지면서 듀이 보젤라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결국 듀이 보젤라는 미국 내에서도 악명높은 싱싱 교도소에 수감, 힘겨운 교도소 생활을 해야 했다. 억울하고 괴로운 시간들을 듀이 보젤라는 권투를 생각하며 버텼고 힘들 때마다 권투 연습에 매진했다.

또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법원 검찰 언론사 등에 매일 청원서를 보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편지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가 수감된 후 또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앞선 사건과 동일한 수법의 살인 사건이었다. 이에 언론은 끊임없이 결백을 주장한 듀이 보젤라가 진범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사건 재조사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검찰의 농간이었다.
당시 강력 범죄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뉴욕 경찰은, 비판 여론을 우려해 범인이 흑인이라는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뚜렷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붙잡아 넣었다. 하지만 재수사 여론이 불거지자 검찰 측은 형량 조정을 미끼로 듀이 보젤라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물론 듀이 보젤라는 평생 살인범으로 사는 대신 감옥에서 끝까지 무죄를 밝히겠다며 검찰 측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듀이 보젤라는 이후 1990년 2심 재판을 받았지만 판결을 바뀌지 않았고 20년 가까이 끊임없이 무죄를 주장, 기약없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며 억울하고 힘들때마다 권투를 하며 괴로움을 참아내었다.
그는 30년간을 매일같이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편지를 써서 모든 정부기관에 보내었지만 모두가 이를 무시했다.
실망할 때도 많았지만 그는 끝까지 그 편지 보내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드디어
2007년 법률봉사단체 결백 프로젝트는 듀이 보젤라 사연을 연방 법원에 제출했으며, 연방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보젤라 사건을 재심리했다.
그 결과 2009년 10월 연방 대법원은 듀이 보젤라에겐 뚜렷한 살해 동기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언론은 그를 인간승리라며 대서특필했다.

듀이 보젤라는 출소와 함께 평생 꿈이었던 복서 데뷔전을 준비했다.
2011년 10월 그의 데뷔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에게 전화까지 걸며 승리를 기원했다. 첫 무대에서 승리를 거둔 듀이 보젤라는 기어이 복서의 꿈을 이뤄내 감동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