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2) - 누가복음 15장 25절-35절 누구나 죄 짓고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는 제 1의 탕자입니다. '나는 아들의 자격이 없으니 아버지의 종으로 받아주소서.' 죄 많이 짓고 돌아올 때는 이렇게 겸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제1의 탕자에서 분명히 알아둘 것은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 탕자가 아무 한 일도 없이 잔치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일컬어 '믿음'이라고 합니다. 나의 '의'로 이 잔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은혜에 힘입어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아는 것 자체가 '믿음'입니다. 양심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죄책감이 오래 갑니다. 주님이 용서 해주셨다는 이야기를 해줘도 잘 안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차츰 복음의 빛이 비추기 시작을 하면 값없이 받게 되는 용서의 은혜가 뭔지를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로 들어갑니다. 그 영혼 속에 빛을 비추기 시작하면,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 의 피가 내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적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저는 교회생활에서 제일 속상할 때가 같은 교인이 다른 교인을 용서하지 않을 때입니다. 물론 억지로 용서하긴 정말 힘들지요 우리가 이 시간 제2의 탕자의 비유를 깨달으면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유는 내용은 밭에 나가서 일을 하던 맏아들이 집에 들어오는데 집안에서 풍류소리가 들려요 '이게 무슨 소리냐' 하인이 말하기를… '당신의 동생이 건강한 몸으로 돌아와서 당신의 아버지가 너무 기뻐서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푸는 중입니다.' 그러자 화가난 형이 집에 들어가질 않습니다. 동생이 온갖 짓 다 하고 왔는데 쫓겨나야 마땅한데 사랑 받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이 형은 자기 동생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이 없습니다. 이 형은 제2의 탕자인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오래하고 교회생활을 오래하게 되면 제2의탕자와 같이 됩니다. 자기는 다 잘하고 괜찮은 것 같은 착각으로 빠지고 제 2의 탕자가 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이 맏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이 집에서 살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동생을 생각해야 합니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은 동생입니다. 이유가 없어요. 죽었다가 살았는데 화를 내고 시기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교인들을 생각할 줄도 모르고, 자기밖에 모릅니다. 나는 몇 십 년 기른 자기 교인이 나가는 것도 마음이 아픈데 누구든지 나갔다가 이 교회 저 교회 헤매다가 다시 돌아올 때에 다른 교인 중에 누군가가 '나는 저 사람이 들어오면 절대 용서 못하고 내가 나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둘째, 아버지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잃어진 둘째를 기다리며 노심초사하며 슬퍼하며 밤 깊어도 문도 잠그지 못하고 늘 기다리던 그 아버지… 그토록 기다리던 둘째가 돌아와서 너무나기쁜 아버지에게 이게 할 수 있는 짓입니까? 이게 아버지 집에서 살고 있는 맏아들이 하는 태도로 맞는가요? 불평하기 시작한 말은 '내가 아버지 집에서 죽도록 섬겼는데...' '죽도록 섬겼다'는 말의 히브리 원어로는 ---'종살이 했는데...' 아버지는 나에게 염소새끼 한 마리를 잡아 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교회 다니면서 억지로 봉사하면 종살이나 똑같습니다. 봉사 하면서도 자기를 몰라 준다고 불평하고 화내고 하는 것이 종살이입니다. 진짜 아들은 안 그래요.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특권이 됩니다. 아버지의 아들은 특권입니다. 내게 맡겨주신 특권입니다. 음식하는 것 , 파킹장 돌아보는 것.. 여러 가지 구석구석 일하는 것이 특권입니다. 아버지와 같이 살아도 재산이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자기 동생을 ‘내 동생’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당신의 아들’ 이라고 칭한다면 더 이상 진짜 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또, 자기는 아무 잘못없고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다 섬겼다고 합니다. 많이 생각하셔야되요 교회 생활 오래하면 오래 할수록 자기 ‘의’만 커져요. 바리새인과 같아지고 뭐든지 자기 뜻대로 안되면 온갖 불평을 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하신 비유는 제1의 탕자로 시작해서 2탕자로 가는 것 우리가 이방인으로 시작해서, 죄인으로 시작해서 바리새인처럼 되어가는 과정과 ‘하나님의 의’가 필요 없는 것이 되는 것에 대한 엄중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또한, 이 비유는 모든 죄인들에게 절대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복음의 비유입니다. 제가 처음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이 탕자의 비유를 접했을 때 이 설교를 하면서 마음이 얼마나 떨려서 끝도 없이 울며 했던 그 때의 설교가 정말 참 설교였음을 상고합니다. 나는 항상 영원히 가슴이 떨리기를 바랍니다. 항상 탕자의 심정으로 주님 앞에 겸손함이 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에게 돌아와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그 첫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